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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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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석원장은 2천년 동안 비전되어 온 한방결찰요법을 전수받고 필자 자신의 치질경험과 임상사례를 바탕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체계화시킨 국내 최초의 한방치질전문의이다.

  • 대구한의대학교 졸업

  • 저서 : 치질, 치루 이렇게 완치된다. (1994년 상경사)
    치질왕 신종석. (2004년 위즈밸리)

  • 현재 대한한방치질학회 회장

  • 국내 최초 한양방협진 치질전문병원 신앤정한의원, 신앤정의원 개원

12016년 7월 진료실에서....

1991년 치질전문 한의원을 개원후 치질진료를 통하여 많은 환자분들과 인연을 맺은지가 벌써 20여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2003년 국내최초로 외과전문의와 같이 진료하는 양한방협진 결과,환자분들의 만족도와 신뢰로 꾸준히 성장하여 지금까지도
저를 믿어주시고 찾아오시는 환자분들을 위하여 새롭게 인사를 올립니다.

20년동안 오직 치질환자 진료에 전념하신 외과전문의 이상용원장님을 모시고 내원하시는 환자 한분한분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환자분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인술을 펼치려고 합니다


2일년을 되돌아 보면서....

작년 3월 5일 첫환자를 수술할 때의 기억이 새로운데.. 벌써 일년이 흘렀네요..
점점더 시간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나이가 된 것 같아서 허무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2년 6개월이라는 달콤한 세월을 보내다가 다시 진료에 복귀하면서.. 병원이 예전처럼 잘될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예전과는 다른 병원환경속에서 개원만하면 환자가 찾아도는 시대가 끝이난지라, 약간의 걱정도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남들과는 다른 경영철학을 갖고 있고 또한 진료에 있어서도 남들과는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어서 자신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3월에 마흔분이 저희 병원에서 수술받으셨고, 4월부터 70분정도 수술받으시다가 작년 12월부터는 80분정도가 저희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무슨 일이든 자기가 계획한대로 될때의 기쁨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듯이, 진료하면서 병원이 제가 생각한 것 보다 잘되어가니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많은 환자분들을 보면서 스트레스 받을 때도 많이 있지만 , 완치되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면서 의사로서의 보람도 많이 느꼇습니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1월과 2월은 환자분들로 정신없이 바빠서 주위에서는 행복한 비명이라고 하시더군요.

다시 진료에 임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은 외국에계시는 교민들께서 수술하러 저희병원을 많이 찾는데 놀랐고, 국제결혼으로 국내의료보험을 갖고 계시는 중국교포들이 한달에 5분이상인데 더욱놀랐으며 수술받으시는 분들중 종신보험이나 생명보험으로 수술비보조를 받으시는 분이 50%이상인데 한번 더 놀랐습니다. 이제는 양한방협진을 하지않고 단독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순종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경쟁력을 갖추지 않고, 예전의 마음가짐이나 태도로는 망하기 쉽상인 것을 다시한번 느끼는 한해였습니다.

무슨일이든 최선을 다해서 임하는 자세때문에 저는 다시진료에 임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구요. 많은 환자분들이 저희병원을 믿고서 몸을 맡기셔서 그 또한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욱더 노력하고 성실한 자세로 진료에 임할 것을 다짐하며, 한해를 지나보내고 미래를 기약해봅니다. 2009년 3월 13일 진료실에서..

3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출발하려 합니다.

1991년 한의원을 개원한 후 벌서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음 환자를 보면서 손떨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수만명의 환자를 보면서 강산이 두번 바뀔려고 합니다.
두세 곳에 불과하던 치질전문병원이 이제는 동네마다 한곳씩 생겨있는 현실에서 어떤 병원이 환자에게 최선의
만족을 주는 병원이냐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2000년 동안 비전되어온 결찰요법을 개선하여 양질의 의료를 선보이기 위해서 2003년 한,양방협진 치질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만족하고 간혹 예전의 결찰요법이 더 간단하고 치료후 편하다는 많은 재진환자들의 의견에 결찰요법의 과학화를 연구했습니다.

예전보다 훨신 간단한 수술로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게 끔 시술할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환자분의 몸이 제몸이라는 생각으로 성심성의껏 진료에 임할려고 합니다.
이번에 병원을 오픈한지 너무 오래된 관계로 인테리어도 새롭게 하고 변화된 의료환경에 의사의 자세도 서비스정신이 투철하고
마음이 따뜻한 부드러운 의사로 변해서 환자분들께 다가가려고 합니다.
2008년 2월 23일 병원앞 커피빈에서..

42003년 한양방협진을 시작하면서..

시간이란 참 빨리도 지나가네요.

11년 전,그러니까 1994년에 " 치질-치루,이렇게 완치된다" 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몇 년을 준비한 책이 출판되어 받아봤을 때 얼마나 감동이 되던지,그리고 그 서문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글썽거렸는지 모릅니다. 제목을 정할 때에도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고,서문은 또 얼마나 쓰고 지우기를 반복 했었는지.

이제 새 책의 출간을 앞두고 서문을 쓰다 보니 그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촌놈이 서울 올라와서 성공해보려고 참 노력도 많이 했지요. 풍채 좋은 전형적인 한의사의 모습이 아니기에 무시도 많이 당했고,한의사가 치질 수술을 한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분들께 한방 수술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 책을 쓰기 시작했었고, 책이 나온 후에 환자가 몰려드는 꿈도 수도 없이 꾸었습니다. 당시 28살의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는 일도 많았지만, 그때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썼습니다.

이제는 환자분들께 확실한 믿음도 드리게 되었고, 5만부 이상 판매된 치질 책은 제 책이 유일하다고 하더군요.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저는 제가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또한 저는 인생에 운이 세번 찾아온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운은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매년 찾아오는 것 같이 느껴져서 말입니다. 제가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은 오직 한가지, 제가 배운 의술에 대한 믿음뿐이었습니다.

치질로 고생하던 재수시절,무면허 의사인 스승님께 수술을 받고 완치된 후 제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런 결정을 할 수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치질 환자로서 아파보았기 때문에 동변상련의 자세로 환자들에게 임했고,스승님으로부너 수천 년 동안 비전되어온 의술을 전수받음으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스승님과는 전생에 큰 인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이며 대구며 전국의 유명한 양방 병원들을 찾아다니셨지만 고치지 못했던 아버님의 치루를 스승님께서는 한 달 안에 못 고치면 환불한다는 장담 하에 완치시켜주셨고,나중에는 아버님을 따라간 제 치질까지 고쳐주셨습니다.

처음 스승님께 찾아갔을 때에는 아무런 기구도 없는 가정집에서 무면허로 진료한다는 사실에 믿음을 갖지 못했지만, 결국 다른 병원에서는 고칠 수 없었기에 다시 찾아뵙게 되었지요. 치질 수술을 받을 때 항문에 불이 난 것처럼 느껴지던 엄청난 통증,수술 후 열흘 동안 고생고생하면서 재진 다니던 일,수술한 지 보름후에 항문밖으로 튀어나온 또다른 치질 때문에 재수술을 받던 일,등이 생각나네요. 기침만해도 전신이 아파오고,진통제를 먹어도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데 왜 그리 시간은 더디게 지나가는지-----. 그때는 보름이 15년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서 완치가 된 후 배변할 때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이것만 배우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수술을 받고서야 똥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고,항상 찝찝하고 불편했던 것이 사라지니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장에 달려가"저를 제자로 삼아주십시요."라고 말하자,너무나 쉽게 "그래라." 며 허락해 주시더군요. 스승님도 저를 마음에 들어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시고,뛰어난 의술을 배울 수 있게 해주신 스승님께 이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후 대학에서 한의학을 전공하면서 스승님께는 치질 수술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워갔고,결국 한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한의사가 수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수술은 한방에서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마취도 마찬가지고요. 양방에서 마취는 약 160년 전(1846년)W.모턴이 공개실험에 성공한 에테르 마취가 최초이지만,한방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 중국 한나라 말기의 화타라는 분이 마비산이라는 마취약을 개발해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나 위장을 절개했다가 다시 꿰매는 등 그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외과 수술을 성공시켰습니다. 삼국지의 관운장이 독화살을 맞았을 때 벼를 도려내고 독화살을 빼내신 분이 바로 그 화타선생이십니다. 서양이 발명한 마취약보다 약 1600년이나 먼저 개발한 것이지요. 이렇게 좋은 의술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은 것은,화타선생의 예기치 못한 죽음 때문입니다. 조조가 자신의 시의(侍醫)가 되어줄 것을 청했으나 명예와 벼슬을 추구하지 않은 화타선생은 아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집으로 돌아갔고,결국 그 사실이 탄로나서 서기 208년에 사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당시 양방이나 한방이나 외과 수술이 발전하지 못한 원인은 수술 후 수술 부위에 심한 염증이 생겼을 때 막을 방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크게 고생하거나,심지어 죽는 일이 수없이 생겨났었지요.그러던 것이 19세기 후반 파스퇴르와 코흐 같은 생리학자들이 병원균이 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래,리스터의 무균처리법을 비롯하여 소독과 멸균기술이 발전하게 됨으로써 염증문제 해결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외과 수술이 해결해야 했던 또 하나의 문제는 출혈이었는데,이 문제는 란트슈타이너가 ABO식 혈액형을 발견한 후 안전한 수혈이 가능해지면서 해결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양방의 외과수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었지요. 이것이 한방이 외과 수술에서 양방에 뒤쳐진 원인이 된 것입니다.

마취술도 빨랐고 수술도 먼저 시작했지만, 한방에는 공동 연구진이 없었다고 할까요? 치질 수술도 수천 년 전부터 한방에서 이루어져 왔으나,제자에게만 전해지고 널리 퍼지지 않아서 발전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한테 전해진 것도 어떻게 보면 기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제가 처음 치질 전문 한의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다른 양방 병원에서는 수술 후 재발이 심했고, 치루의 수술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술해봐야 재발한다는 말에 치료를 포기하고 방치하다가 심부치루가 되어서 저를 찾아온 환자도 수없이 봤습니다. 지금은 그런 환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봐서,이제는 치질 수술법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1994년 1월달에 책을 펴내고 신문마다 광고를 낸 것이 양방 쪽에 많은 동기를 부여했고,이것이 치질 수술의 급격한 발전에 계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치질 전문 병원이 몇 군데 없었습니다. 지금은 수없이 많은 치질 전문 병원이 생겨서 환자유치 전쟁이 벌어졌지만 말입니다. 척추마취를 하지 않고,수술 후 곧바로 퇴원할 수 있고,재발이나 후유증이 적고, 완치가 빠르다는 등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동안 많은 환자분들을 치료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수술 후 호소하는 통증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즉 진통제를 처방하거나 주사할 수 없는 한의사로서의 한계 때무이었습니다. 또한 10년 전만 하더라도 통증에 대해서 잘 참는 환자분이 많았지만,이제는 수술 후 아프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시대가 돌아왔습니다. 이점을 느끼면서 저는 한 때 병원을 하기가 싫어지고 저 자신이 한심할 때가 많았습니다만,양방과 함께 진료를 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천 년 동안 내려온 한방의 장점에 최근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진 양방의 의술을 결합할 수 있다면 최고의 의술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2003년 5월 20일 처음으로 한-양방 협진을 시작했습니다. 한-양방 협진으로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었보다 좋았고 수술 후 만족하시는 환자분들을 보면서 저도 다시 한번 삶의 보람과 한의사로서의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10년 만에 새 책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새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0년 전과 지금의 치료방법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며,예전보다 수술 후 관리법과 주의사항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전과는 달리 딱딱한 글을 읽기 싫어하는 경향이 많아졌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재미있는 만화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만화로 친근하게 다가감으로 인해서 한-양방협진 수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무섭고 아프다고 알려진 칮리 수술에 대해서 겁을 먹고 치료시기를 미루면서 고생하시는 환자분들이 안심하고 치료를 받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환자가 왕인 시대가 열렸습니다. 고통을 줄이고 만족을 최대한 제공하는 최고의 으술과 시설도 중요하지만 ,환자분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정성껏 모신다는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한 시대 말입니다. 제 책을 읽고서'아! 이렇게 재미있는 치질책도 있구나.' 하면서 웃으시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치질 수술뿐만 아니라 인생에 도움이 되는 그런 철학이 담긴 책을 쓸 수 있도록 더욱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2004년 11월 신사동 병원의 원장실에서..

5치질과 나의 인생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기를 똥꼬만 보고 사니 똥냄새 나지 않니? 하는 농담반 진담반의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기분이 나쁠까요? 아니면 좋을까요?
이답은 나에게 있어서는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나의 인생이 가장 윤택하고 성공의 지름길이 된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치질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치질을 배워서 치료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대구나 포항아니면 경주의 내고향부근에서 고만 고만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내가 대학다닐 때 내게 치질스승님이 계시며 방학 때마다 치질환자를 보러 스승님을 찾아 간다고 친구들에게 말했으나 다들 한의학으로 치질을 잘 고칠까? 하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는 내자신을 돌아보면 한심함을 느낄때가 많았다 내외모가 성공한 한의사 즉 전형적인 한의사의 모습 즉 인품이 넘쳐나오며 풍채가 당당한모습 그리고 몆대씩 내려온 한의사의 집안도 아닌지라 졸업하여 한의원이 잘될까?하는 염려가 한의학공부 보다도 더 많았다.

내가 치질로 고생하다가 환자와 무면허 의사의 신분인 우리 스승님 호는 해암이요 함자는 박태한 이신 이분을 만나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라는 내부탁을 그 자리에서 허락해주신 인연으로 해서 오늘날 "치질 치루 이렇게 완치된다"라는 책을 출판한 뒤 한의학계에서 치질만큼은 1인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오래된 옜날 이야기 처럼 느껴지지만 서울 올라온지 11년 밖에 지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월급 받는 관리한의사로 근무할적에 어떤환자는 원장님 어디있어요?하며 내가 정말로 원장인가하는 의심을 하면서 치료를 받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의학에서 치질을 제대로 고칠수 있는가?하는 의심 때문에 치료를 포기 하는 경우를 많이 보면서 내자신의 머리속에 이 우수한 한방결찰술을 어떻게 하면 환자가 믿게 만들까? 그 고민만하면서 연구하다가 책을 쓰서 환자를 치료하기 전과 치료한후의 완치모습을 공개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그리하여 1년동안을 환자를 보면서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매일 새벽3시 까지 책쓰느라고 내 청춘을 걸었다. 내 친구들은 놀러 다니는 시간에 나혼자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는 최초의 치질, 탈항, 치열, 치루,의 한방치료서를 쓸 때 한번씩 새벽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밖에나가 하늘을 쳐다보니 컴컴한 하늘속에서 무언지 모를 광채가 나와서 내책이 출간만 하는 날에는 치질 환자들이 우리 한의원에 몰려드느 그런 꿈을 꾸곤 했다. 웬지 꿈이아닌 현실인듯한 착각을 여러번할 정도로.....

1993년 초에 한달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치질 환자를 보았다가 벼룩시장에 치질 광고를 내자 환자가 조금씩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치질 환자가 조금있으니까 진료 받으러 와서도 한방치료술을 믿고 치료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다. 드디어 1994년 1월 30일 처음 책이 출판되었다.

다들 왜 책을 썼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분이 많겟지만 내 경우에 있어서 앞에서 이야기 한 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의원광고는 의료법상으로 불법이기 때문에 책으로 광고하는 간접광고 형식을 띠게 된것이라 하겠다. 어찌되었건 이 책으로 말미암아 환자들은 책을 사서 읽어보고 한방치료법을 믿고서 오느데 내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촌놈이 서울 올라와서 처음에 진료 하면서 소원을 하늘에 바란적이 있는데 다름아니라 한달에 치질 환자 30명만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적이 있지만 눈앞의 현실은 환자가 물밀 듯이 오느 것이 아닌가. 환자가 한달이나 예약이 밀릴정도로 한의원이 잘되어 오늘의 한의원자리인 신사역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한의사 중에서 맨발로 출발하여 5년 만에 벤츠를 산 최초의 한의사 그리고 치질 책중에서 유사이래로 가장많이 팔린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게 된것도 모두 치질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처음 출간되자 말자 건강부문 베스트 10안에 10주 연속 들었음)

갑자기 환자를 너무 많이 보아서 몸도 마음도 너무 괴로운 시기가 찾아왔다. 왜냐하면 일요일도 공휴일도 없이 아침10시부터 저녁 7시 까지 환자를 보고나서 저녁 식사도 않고 잠을자고 10시 쯤 일어나서 혼자 저녁을 먹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이렇게 1년 정도 지나자 모든 것이 싫어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도 들어서 진료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 어릴때부터 육상선수 볼링선수등 운동을 좋아한지라 몆 년 동안 진료는 소홀히하고 골프에 미쳐서 그리고 프로골프가 되고 싶어서 엄청 골프에 투자하였지만 프로테스터에 두 번이나 아깝게 떨어지고 다시 한 번 내인생을 되돌아보니 소홀히 한 한의사의 임무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우연 찮게 인터넷이라는 데를 들어가 보니 내가 우리나라 최초로 치질 책광고를 한사람인데 골프에 미쳐 있다가 지금에와서보니 내 뒤에 책낸사람들이 먼저 들어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컴맹에서 개인교습을 받으며 조금씩 컴과 친해지고 인터넷홈페이지에 나의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치질 상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 제공을 하는 그런 홈페이지이고 싶다 .

이 모든 것이 치질로 인하여 여기 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치질을 치료하는 것이 내 인생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1998년 3월 15일 아침에 - 원장 신종석